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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말 잘하기와 경청의 힘

시끄럽기 짝이 없던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쓰레기처럼 더러운 막말과 욕설도 자취를 감추고 고운 말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누구나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흔히 미사여구를 현란하게 구사하며, 막힘 없이 재미있게 청산유수로 말하는 달변을 말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매끄러운 말솜씨가 아니라, 말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어눌하더라도 진정성이 있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실제로, 말을 하면서 더듬거리거나 머뭇거리고 말을 끊는 등의 어수룩한 빈틈이 있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기억도 잘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거짓말처럼 무서운 살상 무기도 없다. 지금 우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거짓말, 몹쓸 말, 험상궂은 언어를 걷어내기만 해도 세상이 훨씬 평화롭고 조용해질 것이다. 어디 거짓말뿐이랴, 허언, 빈말, 말 바꾸기, 말 돌리기, 임기응변, 막말, 욕설, 험담, 비방, 중상모략, 악마처럼 떠도는 유령의 언어들, 무자비한 무기로 바뀌는 말들….   지금 우리 현실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출세한 사람들, 많이 배운 사람들, 익명의 누리꾼들, 특히 정치가들이다. 말싸움, 거친 말, 험한 말, 가시 돋친 말, 말도 안 되는 말, 선량한 동료 시민들 청력 테스트 등으로 날밤을 지새운다. 일부 언론은 그걸 앵무새처럼 받아 적는다.   이분들의 입을 정화할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발칙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눈부시게 발달한 첨단과학을 활용해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간단하게 요점을 설명하자면, 거짓말이나 몹쓸 말을 들으면 즉시 달려가서 귀싸대기를 통쾌하게 후려치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국회를 비롯해서 방송국이나 신문사처럼 말 많은 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나서는 각설이 품바타령을 한바탕 시원하게 불러제끼면 얼마나 속 시원할까?   제법 그럴싸한 생각인 것 같기는 한데,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워낙 거짓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여기저기서 귀싸대기 후려치는 소리에, 얻어맞고 내지르는 비명으로 온 세상이 더 시끄러워질 것 같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속절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니 참 답답하다. 제발 말싸움 그만하고 대화하시라, 마음에도 없는 말 마구 하지 말고 진심을 말하시라, 제발 남의 말을 경청하시라… 같은 속절없고 허망한 부탁의 말씀들….   그중에서도 가장 간곡한 부탁은 ‘경청’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경청이 최고의 웅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도 있고,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라는 명언도 있다. 묵언 수행의 의미도 무겁다.   철학자 한병철은 서사를 회복시키는 ‘경청의 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예로 든다. “소설에서 주인공 모모는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심지어 사랑받는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서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회복된 서사는 아픔을 치유한다.”   삼사일언(三思一言)도 좋은 처방이 될 것이다.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이 말씀만 잘 지켜도 세상은 한결 평화로워질 것으로 믿는다. 세 번이 어려우면, 단 한 번이라도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을 하시라, 그러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경청 막말과 욕설도 생각 하나 각설이 품바타령

2024-04-25

[이 아침에] ‘마흔아홉’을 되돌아본다

마흔아홉을 지난 지도 십여 년이 넘었다. 마흔아홉까지 오는 길은 복잡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길이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이제 한국에 산 시간보다 더 오래 한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해마다 또박또박 나이를 먹다가도 앞자리가 바뀌는 해가 오면 삶을 더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십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은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는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른들은 그 시절이 좋은 때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가진 것이 없어 불안한 시절이었다. 이십 대가 끝날 즈음 결혼을 하고 새내기 부모가 되었다. 아이 키우는 일도, 모국이 아닌 곳에서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식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배운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며 생활인이 되어갔다.     마흔아홉에 비로소 꿈을 내려놓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가르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대단한 후회나 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마흔아홉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십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한 발자국 밀려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사십 대의 마지막에 이제까지와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 늘 하던 것을 하지 않거나 안 해본 것을 조금씩 해 보았다.   빨간 치마를 하나 장만했다. 빨간 가방도 샀다. 검은색 단화를 벗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붉은 립스틱도 짙게 발랐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부엌까지 모델처럼 걸어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여러 해 동안 옷장을 차지했던 빨간 치마는 결국 한 번도 외출복으로 입지 못했다.   오십 대가 되니 생각 속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사십 대에 멈춰 있는데 나이가 훨씬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사람이 보면 그저 나이밖에 없는 중년일 터이고 노인이 본다면 아직도 창창한 꽃 같은 시절이었다.     이제 육십을 넘었다. 지루한 노년이 시작된 것이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목에는 실개천 같은 주름이 흐른다. 허리 디스크도 얻었고 두통도 달고 산다. 가지고 있는 힘을 적절히 분배하여 쓰고 있다. 마음 가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리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제한적이지만 순도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많은 나이 가운데 하필 마흔아홉이 기억에 남은 나이가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나이를 앞둔 아우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이든 선배의 생각 하나를 훔쳐가 주었으면 좋겠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나이 가운데 지난 시간 생각 하나

2022-09-05

[이 아침에] ‘마흔아홉’을 되돌아본다

마흔아홉을 지난 지도 십여 년이 넘었다. 마흔아홉까지 오는 길은 복잡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길이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이제 한국에 산 시간보다 더 오래 한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해마다 또박또박 나이를 먹다가도 앞자리가 바뀌는 해가 오면 삶을 더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십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은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는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른들은 그 시절이 좋은 때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가진 것이 없어 불안한 시절이었다. 이십 대가 끝날 즈음 결혼을 하고 새내기 부모가 되었다. 아이 키우는 일도, 모국이 아닌 곳에서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식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배운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며 생활인이 되어갔다.     마흔아홉에 비로소 꿈을 내려놓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가르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대단한 후회나 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마흔아홉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십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한 발자국 밀려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사십 대의 마지막에 이제까지와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 늘 하던 것을 하지 않거나 안 해본 것을 조금씩 해 보았다.   빨간 치마를 하나 장만했다. 빨간 가방도 샀다. 검은색 단화를 벗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붉은 립스틱도 짙게 발랐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부엌까지 모델처럼 걸어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여러 해 동안 옷장을 차지했던 빨간 치마는 결국 한 번도 외출복으로 입지 못했다.   오십 대가 되니 생각 속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사십 대에 멈춰 있는데 나이가 훨씬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사람이 보면 그저 나이밖에 없는 중년일 터이고 노인이 본다면 아직도 창창한 꽃 같은 시절이었다.     이제 육십을 넘었다. 지루한 노년이 시작된 것이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목에는 실개천 같은 주름이 흐른다. 허리 디스크도 얻었고 두통도 달고 산다. 가지고 있는 힘을 적절히 분배하여 쓰고 있다. 마음 가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리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제한적이지만 순도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많은 나이 가운데 하필 마흔아홉이 기억에 남은 나이가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나이를 앞둔 아우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이든 선배의 생각 하나를 훔쳐가 주었으면 좋겠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나이 가운데 지난 시간 생각 하나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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